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제 그 맡은 사명을 이루려 하시는 것을 발견하고, 곁에 서 있던 두 제자의 마음을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에게 향하게 하였습니다. 두 제자 곧 안드레와 사도 요한은 스승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들의 스승인 세례자 요한이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분이라 고백한 분이시니 그저 따라갈 뿐이었는데, 주님께서 먼저 그들에게 말씀을 건네시면서 그들을 주님에게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두 제자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예수님에 관하여 많은 말씀을 들었을 터이고, 요한복음에 기록된 것만 보더라도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보다 앞선 분이고 그보다 먼저 계신 분’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성신으로 세례 주시는 분’이라고 들었을 터인데도 정작 예수님의 ‘무엇을 구하느냐?’ 라는 물음에 ‘랍비여’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날 10시 곧 오후 4시에 주님 계신 곳에 함께 거하게 된 이후에 안드레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깨닫게 됩니다. 그는 자기들이 그렇게 바라던 메시아를 만난 기쁨에 그 시로 자기 형 베드로에게 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안드레와 요한과 베드로가 이 시점에 ‘메시아’로 깨닫기는 했지만 그들이 깨달은 내용은 여전히 고쳐져야 할 부분도 많고 채워져야 할 부분도 많았습니다. 가령 공사역 제3년 유월절 어간에 주님께서 벳세다 들에서 오병 이어의 표적을 베푸실 때에 주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주님을 임금으로 삼고자 하였는데, 그때 주님께서는 신속히 제자들을 이 무리와 격리시켜 이 무리의 그릇된 메시아관에 오염되지 않도록 먼저 가버나움으로 보내십니다. 주님께서 오병 이어의 표적을 행하신 그다음에 가버나움 회당에 가셔서 자기를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교훈하시니까, 주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대거 주님을 떠나게 되고 소수의 제자들만 남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하시니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생명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어디로 가리이까?” 하고 참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이 주님의 공생애에서 결정적인 전기가 되는 셈인데, 이렇게 제자들이 참된 신앙을 고백하기까지는 주님께서 그들을 길이 참으시며 교훈하신 수고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때로는 그들을 가르쳐서 깨닫게 하시고, 때로는 무리들의 그릇된 생각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하시고, 때로는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이 사건 이후에도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가르치며 믿게 하시는 일을 계속 행하셨고, 마침내 약속하신 성신을 주셔서 그들을 사도로 세워 온 천하에 보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제자가 주님을 따르던 그날에도 주님께서 그들을 이끌어서 참된 믿음에 점점 나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