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사도는 요한복음서의 짧은 머리말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인생의 타락과 죄인의 구원이라는 광활한 역사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고, 그처럼 옛 언약 시대의 여러 물줄기들이 새 언약 시대의 대양으로 접어드는 웅장한 광경을 생생하게 그려 냅니다. 백발의 현인이라도 다 헤아릴 수 없어 깊은 사색에 접어들게 하는 그런 심오한 내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만, 초등학생이라도 능히 알아들을 수 있고 외울 수 있는 그런 쉬운 표현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요한 사도의 비범한 은사나 특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요한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 바 되었던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요일 1:1-2)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이시기 때문에, 한낱 인생에 불과한 요한이 ‘태초에’ 속한 일들을 계시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1에서 ‘태초에’ 하는 표현은 ‘영원한 가운데’라는 뜻입니다. 인생 가운데 아무도 창조의 순간을 본 사람이 없으니까, 오늘날 과학자들이 별의별 가설을 말하고 사상가들이 세상의 시작에 관하여 온갖 견해를 제시할 때 그런 가설과 견해에 다들 의문이 들지만 창조를 본 일이 없으니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할 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도는 창조의 순간만 아니라 그 이전에 관해서도 담대하게 진리를 선언합니다. 이는 그가 태초부터 있는 생명 곧 영원한 가운데서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계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자기의 종교적 체험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의 종교적 사상을 설파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인생과 만물이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과 말씀이 성신 안에서 영원하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고 계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를 계시해 주시고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에, 한낱 인생이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의 세계를 들여다볼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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