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사도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를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복음서를 기록하였는데,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신자가 얻는 영원한 생명이 놀랍게도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임을 심오한 머리말의 중심에서 선언하였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1:12-13)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양자로 삼아 주시는 은혜를 전하는데, 요한 사도는 아예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 사도의 차이점을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두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심히 부요로운 사실 가운데서 어떤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요한 사도가 전한 진리에 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5:1-2)

바울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요컨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것이라고 교훈합니다만,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리스도처럼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본받아 사랑 가운데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 말씀에서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서 단순히 법적인 지위만 변화되었다면, 결코 그리스도처럼 살 수도 없고 하나님을 본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받아 법적 지위에서 변화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 없이 살던 상태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 사도가 요한일서를 작성한 목적이 바로 이 주제를 자세히 교훈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신의 마지막에서 사도는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서신을 작성하였다고 언급하였고 서신의 처음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너희가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서신을 받는 교회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모셨기 때문에 사도와 거룩한 사귐을 나눌 수 있게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이 거룩한 사귐이 단지 사람들만의 사귐이 아니라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하시는 사귐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와 교회가 거룩한 사귐을 나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셨기 때문이고, 그리스도를 모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처럼 아버지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셔서 사랑하셨으니 서신을 받는 교회도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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