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낭독한 말씀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다’ 하는 말씀은 우리가 지난주 마지막에 배운 말씀에서 곧장 이어집니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요 1:8)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는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 어두운 세상에 구원의 빛을 비추시려고 하나님의 종들 곧 선지자들을 대대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후에도 지으신 만물을 통하여 친히 자기를 계시하십니다만, 인생 가운데 아무도 스스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성과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그래서 오히려 피조물을 섬기는 데로 추락하였습니다. 이런 비참한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하실 뜻을 드러내셨는데, 옛적에는 이스라엘을 종 되었던 집 애굽에서 건져 주시는 일로 그 뜻을 크게 드러내셨고, 이후에 계속 자기 백성을 원수에게서 구출하신 일로 드러내셨습니다. 또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 구원의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전하고 또한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 마지막 선지자가 바로 세례자 요한 아닙니까?
세례자 요한이 선지자이면서 동시에 선지자보다 나은 자이고 여인이 나은 자 가운데 그보다 더 큰 이가 없다 할 만한 인물입니다만, 그래도 그는 ‘이 빛이 아니고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입니다. 요한 사도가 ‘그는 이 빛이 아니요’ 한 것은 선지자 세례자 요한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직 메시아를 온전히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굳이 세례자 요한이 이 빛이 아니라고 언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낱 인생에 불과합니다만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일로 심히 영광스럽게 되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여호와의 영광을 뵙고 왔을 때에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사람들이 감히 가까이하지 못할 만큼 되지 않았습니까?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 산에서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릴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 제물을 다 연기로 바뀌게 했을 때에, 사람들이 엘리야의 권위에 압도되어 그 명령대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다 죽이지 않았습니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비친 것은 여호와의 영광 때문이고 엘리야의 권위가 압도적인 것도 여호와의 거룩하심 때문이었습니다만, 연약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의 광채와 권위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런 까닭에 요한 사도는 세례자 요한의 권위 있는 강설과 강력한 감화력으로 말미암아 세례자 요한 자신이 강설로 전하던 그리스도와 그의 강설을 감화력 있게 하시는 성신의 영광이 조금이라도 가려지시지 않도록, 그래서 사람들이 성신의 감화를 힘입어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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