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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C 신학교

  • IRC 신학교 설립의 의의
  • IRC 신학교육의 역사와 방향

    독립개신교회는 세계 교회 협의회(WCC) 가입 문제로 한국 장로교회가 분열되던 시기에 출범한 교회이다.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신학적 논의도 없이 용공(容共)이라는 정치적 논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고 나아가고 또한 선교사들의 경제적인 지원에 끌려서 교회의 방향이 흔들리던 시기에, 허암(虛菴) 김홍전 박사는 주님의 인도 아래에서 동질의 신앙을 가진 성도들과 함께 개혁 신앙고백서에 근거한 교회를 시작하였다. 외부의 경제적인 지원으로부터 ‘독립’하고 지방색을 띤 정치적 논쟁에서부터 ‘독립’한 독립개신교회(The Independent Reformed Church)가 성약교회를 모교회(母敎會)로 하여서 1964년에 조용히 출범하였다. 


    신학 교육은 교회의 진행과 사명 감당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독립개신교회의 기초를 놓았던 두 분 목사는 모두 신학 교육에 종사하였던 분들이다. 초대 감독이었던 김홍전 목사는 사해 사본에 대한 연구로 1957년에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해 9월부터 1960년 5월, 미국 남장로교가 WCC에 가입하여서 사임하기까지 대전 기독학관(현 한남대학)에서 학장 고문 겸 이사회 고문으로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64년에 성약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도 1967년 5월부터 1970년 10월까지는 도쿄 기독교대학 교수로서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성약교회 출신인 2대 감독 최낙재 목사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에 1972년부터 1974년까지 광주신학교에서 가르쳤고, 후에는 총회신학교(합동)와 합동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쳤다. 신학교 강의실에서는 따르는 학생들이 있었고, 합동신학교 개교 기념일에 “신학도에게 요구되는 독립적인 연구 태도”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많은 호응을 받았으나, 신학생들의 교회 배경이 각기 다른 데다 노회적인 지지가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운 대로 목회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최낙재 목사는 모범적인 교회가 선 후에야 신학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고, 교회다운 교회를 주께서 세워 주시기를 바라면서 1974년부터 강변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 깊고 풍부하게 가르치는 일에 진력(盡力)하였다. 


    주님의 복 주심으로 성약교회와 강변교회가 든든히 서서 나아가고 성은교회를 개척하는 일이 199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교회의 진행과 함께 주님께서 목사 후보생을 일으켜 주셨기 때문에 최낙재 목사는 1993년 8월 30일부터 정병길, 김헌수에게 신학 수업을 시켰고, 곧 합동신학교에서 신학 훈련을 받은 김명순도 가담하여서 매주 혹은 격주로 함께 모여 신학 전반을 공부하였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목사로 임직된 후에도 중요한 책을 함께 읽고, 또한 준비한 강설을 동료 목사들 앞에서 읽고 서로 격려하면서 조언을 해 주고 있다. 세 학생 가운데서 김헌수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1995-97년에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신학 수업을 하였고, 2001년부터는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의 신학교인 아펠도른 신학대학에서 구약학을 공부하고 있고, 거기에서 공부한 것을 동료 목사들과 공유하고 있다. 주님께서 새로운 목사 후보생으로 김기찬, 이길상을 부르셨을 때에 그들은 그 목사들의 지도 아래에서 성경 원어와 다른 과목을 공부하였고, 이러한 기초적인 준비를 한 후에 각각 1999-2000년과 2007-8년에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를 마쳤다. 


    미국 교회사에서 통나무 대학(Log College)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통나무로 가로 세로가 각각 6미터 정도 되는 집을 짓고, 거기에서 신학 수업을 한 데서 나온 말이다. 1726-45년까지 약 20여 명의 학생이 공부하였는데, 이 대학을 졸업한 목사들이 프린스턴 대학의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746년). 이것은 1993년 8월부터 시작한 공부 모임이 2010년에 시작하는 독립개신교회 신학교의 모체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강변교회 치리회실에서 공부하다가 날씨가 좋으면 과천의 서울대공원 옆에 파라솔을 펴놓고 공부하였고, 2000년 12월에는 아파트를 세내어서 공부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2006년부터는 강변교회 별관에서 모이고 있다. 


    독립개신교회는 처음부터 신학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두 분 목사는 신학교에서 가르치셨던 분이다. 그러나 1층에 해당하는 거룩한 교회가 서지 않고서는 2층에 해당하는 신학 교육을 바르게 할 수 없음을 아시고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셨다. 그러면서도 목사 후보생이 나왔을 때에는 통나무 대학처럼, 그 형편에 맞게 신학 교육을 시행하였다. 


    주님의 은혜로 김기찬 목사의 위임과 함께 한사랑교회가 독립개신교회에 가입하고, 이길상 조사가 성은교회로 청빙을 받자,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이사회에서는 강변교회 최낙재 목사를 교장으로, 성은교회 김헌수 목사를 신학 교수로 각각 청빙하였다. 여전히 통나무 대학의 규모이지만, 교회의 진행과 함께 우리는 신학교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신학 교육이 교회의 진행과 사명 수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데, 그 교육은 ‘학교’의 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와 함께’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교에서 가르칠 사람을 전문적인 신학 수업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신실하게 목회를 한 목사들 가운데서 찾았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主流)의 신앙과 신학을 이어받아 교회로 섰지만, 과거의 것을 답습하거나 전문성에 안주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교회의 바른 자태를 구현할 교회를 세우려고 하면서 교회와 함께 신학 교육을 시행하려고 한다. 

 

교장 김헌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