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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 초기 역사 


1885년에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한국 땅에 발을 디딤으로써 한국 개신교 역사가 시작되었다. 같은 날 같은 배로 입국한 장로교 선교사와 감리교 선교사는 처음부터 협력을 모색하였고, 장로교와 감리교가 합하여 '하나의 조선 교회'를 세우려고 시도하였다. 따라서 두 교회는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중요하게 가르쳤고, 하나님의 온전한 도를 전하거나 역사적인 신앙고백서를 가르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1907년에 회개의 일이 있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결성되었다. 그러나 독노회는 12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만을 택하여서 '신앙고백적인 교회'를 세우는 일에서는 매우 취약한 출발을 하였다. 초대 교회는 구령(救靈) 사업에는 힘을 기울였으나 회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풍부하게 가르친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신비주의와 자유주의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빈약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38년 27회 총회에서는 신사 참배가 정치적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신사 참배를 결정하였다. 지극히 소수의 신자들만 고난 가운데서도 신사 참배를 거부하였으나 교회적으로는 우상 숭배에 굴복한 상태에 떨어졌다. 


하나님께서 1945년에 해방을 허락해 주셔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셨으나 한국 장로교회는 1950년 대까지 신사 참배한 사람들에 대한 권징 문제, 성경의 권위와 영감에 대한 문제, 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하는 문제 등으로 계속적인 분열을 겪었다. 신학적 대립과 더불어 지역 감정, 외국 선교부의 재정적 지원 등으로 말미암아 분열과 대립은 더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독립개신교회의 초기 역사 


독립개신교회의 모체가 된 성약교회는 그러한 와중에서 시작하였다(1964년). 김홍전 목사를 중심으로 한 소수의 신자들은 한국교회의 근본 문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은 데에 있음을 깨닫고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역사적인 신앙고백서를 교회의 고백으로 택하면서 출범하였다. 우리 교회는 고대 교회의 보편 신조들(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를 교회의 공식 신앙고백으로 택하고 있다. 


역사적인 신앙고백을 택하고 있다고 하여서 처음부터 무거운 내용을 회중에게 부과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실정에서 특히 다음의 다섯 가지를 중요하게 가르쳤다. (1) 복음이란 무엇인가? (2) 신령한 생활이 무엇인가? (3) 은혜의 방도가 무엇인가? (4) 교회가 무엇인가? (5)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 이러한 주제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성경을 책별로 가르치기를 힘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 깊고 풍부하게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 결과가 성약출판사에서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2011년 현재 123권의 책이 출간되었고, 1984년 출판사의 설립 이후 총 약 40만권이 판매되었다. 



독립개신교회의 발전 


독립개신교회의 역사는 독특한 점이 있다. 황무지와 같은 상황에서 한 교회로 시작하였고, 성경적인 장로를 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는 목사가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곧 감독제로 개혁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고(故) 김홍전(1914-2003), 고(故) 최낙재(1937-2010) 목사가 그 수고를 다 담당하셨다.  주님의 은혜로 교회가 장성하고, 한 세대 반이 지나서 성경적인 장로를 세운 교회가 생겼을 때에, 교회 정치 체제도 회의체 중심으로 바뀌었다(2009년에 헌장 개정). 1964년에 시작한 성약교회는 1974년에 강변교회를 개척하였고, 강변교회는 대전 성은교회와 전주 한사랑교회를 1990년과 1994년에 개척하기 시작하였고, 두 교회는 각각 1997년과 2005년에 독립된 교회로 섰다. 현재 독립개신교회에 속한 교회는 서울 성약교회, 안양 강변교회, 대전 성은교회, 전주 한사랑교회이고, 다섯 목사의 목양 아래에서 766명의 회원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2009년 총회에서는 다음 세대의 목회자 양성과 복음 전파 사역을 효율적으로 감당하려고 독립개신교회 신학교[링크]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였고, 2010년부터 개교하여서 목회자 후보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에는 독립개신교회의 후보생뿐 아니라 독립개혁장로회와 연변 지역의 후보생도 함께 공부하고 있다. 



대외 관계 


독립개신교회는 현재 세 교회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국내에서는 독립개혁장로회와 교회적인 사귐을 나누고 있고,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de Christlijke Gereformeerde Kerken)미국 정통장로교회(The Orthodox Presbyterian Church)와 1단계 자매 관계에 있다. 미국 정통장로교회와는 중국 연변 지역에서 선교 사업을 함께 하면서 그 과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고 자매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 이외에도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와 공식적인 접촉을 하고 있고, 개혁교회들의 국제회의(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the Reformed Churches)의 회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